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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안토넬로 다 메시나
<서재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
1475년경

'캐비닛 그림' 이라고 불리는 작고 섬세한 개인 감상용 그림.

그림 속 장면은 4세기의 학자이자 수도사였던 성 히에로니무스(성 예로니모)의 서재를 상상하여 그렸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인물로, 그가 번역한 '불가타(vulgata:공동번역) 성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카톨릭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다.

화가는 이 작품 속에서 당시 매우 귀중하게 여겼을 서적과 화병, 화분을 비롯해 영원, 진실, 순수함을 상징하는 공작, 자고새, 놋쇠 그릇 등 수많은 사물들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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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성 제노비오의 세 가지 기적>
1500년경

훗날 피렌체의 수호성인이 된 5세기 인물 '제노비오'의 삶을 그린 연작 4점 중 두번째 그림.

벽에 걸어 방을 장식하는 용도로 만든 '스팔리에라(어깨높이에 걸어 어깨라는 뜻의 '스팔라(spalla)에서 따온 이름)'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제노비오가 피렌체에서 일으킨 세 가지 기적을 15세기 피렌체를 배경으로 그렸다.

작품 왼편은 어머니를 때린 두 아들에게 구마(귀신을 내쫓음)하는 장면이, 가운데는 죽은 소년을 살려내는 장면이, 오른쪽은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보티첼리가 말년에 그린 스팔리에라 패널 연작은 초기의 장식적 화풍 대신 경건하고 담백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조반니 벨리니
<성모>
1480–90년경

개인 예배당의 작은 제단에 놓으려고 만든 것으로 보이는 그림.

소박한 옷차림과 부드러운 몸짓의 성모와 아기예수가 친근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성모를 두른 망토에 값비싼 울트라마린(ultramarine: 진한 파란색 색소로 청금석을 분말로 만든 안료)을 아낌없이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이었음을 짐작케한다.

벨리니는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스승으로 다음 세대의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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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성모자와 세례 요한(가바의 성모)>
1510–11년경

르네상스 회화를 완성한 인물로 평가되는 라파엘로가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바티칸 교황궁에 <아테네 학당> 등의 프레스코화를 그리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와 멀리 있는 사물을 흐릿하게 표현한 공기원근법(스푸마토 기법)으로 인물들 간에 오가는 애틋하면서도 평온한 감정적 교류가 잘 드러난다.  

피에로 델 폴라이우울로
<아폴로와 다프네>
1470–80년경

아폴로와 다프네의 신화를 담은 그림.

큐피드의 황금 화살에 맞아 사랑에 빠진 아폴로가 그를 피해 도망치는 다프네를 뒤좇아 겨우 허리를 붙잡았지만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우스의 도움을 받아 이미 월계수 나무로 변하고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아폴로와 다프네의 신화를 주제로 한 소네트(sonnet:유럽의 정형시)가 당시 피렌체의 상류층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여 그림 속 아폴로가 금실과 보석으로 장식된 사냥복을 입은 젊은 피렌체 귀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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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여인(달마티아의 여인)>
1510–20년경

티치아노가 20대 초반에 그린 초상화. 

이 작품의 별칭 '라 스키아보나(La Schiavona)'는 '달마티아의 여인'이라는 뜻으로 달마티아는 1420년부터 1797년까지 베네치아공화국의 식민지였던 아드리아해 동쪽 지역을 말한다.

절제된 표현 속에서도 여인이 머리에 두른 베일에 그려진 금실이나 어깨에 둘러진 투명한 천의 표현은 티치아노의 화가로서의 솜씨가 이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
<여인(루치아 알바니 아보가르도 백작부인 추정, 붉은 옷을 입은 여인)>
1556–60년경

반짝이는 호화로운 복식이나 값비싼 갑옷귀족들의 우아함을 표현하는데 탁월했던 모로니의 그림.

초상화 속 여성이 입은 다홍색 새틴 드레스의 반짝이는 질감 표현은 유화의 가능성을 한껏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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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호사르트
<어린 공주>
153032년경

진주 수백 개를 엮은 매우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있는 소녀는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2세의 딸 도로테아로 추정된다.

도로테아의 손에는 혼천의가 거꾸로 들려 있는데 손가락으로 북위 55도, 크리스티안의 영토였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 

카라바조(미켈란젤로 메리시 디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1594–95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의 예술적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초창기 그림.

강렬한 사실성과 극적인 빛의 사용으로 스러움세속스러움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얼굴을 찡그린 소년에 대한 묘사 못지 않게 유리병에 반사된 빛과 과일들 하나하나를 생동감있게 표현하여, 소년이 도마뱀에게 손가락을 물린 난처한 순간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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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판 레인
<63세의 자화상>
1669

백 여 점의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가 사망하기 몇 달 전 그린 자화상이다.

색채의 대가 티치아노와 빛의 마술사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렘브란트는 특정한 상황을 설정하고 마치 무대 위 배우가 등장하듯 생동감 있게 인물들을 묘사하여 당대 최고의 화가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회화적 시도로 인해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아들과 두 딸, 어머니와 아내마저 죽고 전 재산까지 잃은 렘브란트가 화려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인생을 개탄하지 않고 덤덤히 남은 삶을 정진하며 간직한 예술혼이 전해지기 때문인지 애틋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귀도 레니
<성 마리아 막달레나>
1634–35년

가톨릭 개혁기 교회는 참회 의식인 고해성사, 명상이나 묵상개인적인 종교활동을 권장하였기에 기도하는 성모나 참회하는 성인이 많이 그려졌다.

도박 중독에 빠진 귀도 레니는 자신의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육체적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한 거부를 동시에 상징하는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그렸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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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페라토
<기도하는 성모>
1640–50년경

성모가 강한 빛을 받으며 조용히 기도하는 이 그림은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한 구도와 색채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조각같은 성모의 얼굴과 옷의 우아한 색채는 라파엘로와 매우 유사하지만 강렬한 연극적인 빛바로크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순수한 색채와 따뜻한 감정을 담은 사소페라토의 그림은 당시 부유한 영국 귀족들의 이탈리아 여행 기념품으로 인기가 좋았다. 

요하임 베케라
<4원소:>
1570

불, 물, 공기, 땅의 4원소를 주제로 한 4점 연작 중 일부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불이 어떤 이미지로 연상되는지 보여주는데, 육고기를 가공하고 굽는 용도가 첫번째였음을, 그리고 육고기와 함께 술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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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임 베케라르
<4원소:물>
1569

요하임은 물을 표현하기 위해 대구, 잉어, 돌돔, 가자미, 광어 등 즐겨먹는 생선과 이를 사고파는 시장 사람들을 그렸다..

특이한 것은 불과 물 두 작품 모두 배경으로 성경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불>의 배경에는 자매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가 그려져 있고. <물>의 배경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의 모습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사도들 앞에 나타나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도록 해주었다는 풍어의 기적을 그린 것이다.

안토니 반 다이크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1638년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두 소년은 찰스 1세의 친척인 스튜어트 가문의 일원으로, 당시 나이 17~18세인 3대 레녹스 공작의 자녀들이다.

두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와 다소 거만한 자세, 망토를 들어올려 화려한 은색 안감을 드러낸 연출, 신발 뒤축에 달린 날카로운 박차 등은 이들의 높은 신분을 돋보이도록 계산된 것이다.

이 초상화는 두 사람이 3년 간의 해외여행을 허락받고, 이를 기념하고자 그렸을 것이다.

기록이 없어 실제로 여행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고, 3년 후 영국에서 국왕 찰스 1세와 의회가 심하게 다투어 전쟁(청교도 혁명)이 일어났을 때 국왕 편에서 전쟁에 참여했다가 두사람 모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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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날
<베네치아 카나레조 입구>

1734–42년경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엘리트 교육의 마지막 단계로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그랜드 투어가 18세기에 유행하였다.

오늘날 여행 기념으로 엽서나 마그넷을 구입하듯이 당시에도 그랜드 투어 념품으로 여행지가 그려진 그림, 조각, 공예 등을 사왔는데, 카날레토가 그린 베네치아 풍경은 당시 인기 상품이었다. 

*카날레토 = 작은 운하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

1805년

인생 마지막 10년간 그렸던 '검은 회화'로 유명한 고야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초상화.

한 손을 허리에 올린 당당한 자세와 검은색 물감을 이러저리 발라 표현된 레이스 숄의 투명함,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얼굴 등 고야의 진취적인 예술감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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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로렌스
<찰스 윌리엄 램튼(레드 보이)>

1825년

인물의 개성과 다채로운 색감, 자연과의 교감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만주의의 초상화.

그림으로는 최초영국 우표에 실릴 만큼 인기있었던 이 작품은 1815년 기사 작위를 받은 로렌스경이 훗날 러시아 대사와 영국령 북아메리카 총독을 지내게 되는 1대 더럼 백작 존 조지 램튼의 아들, 찰스 윌리엄 램튼의 6-7세 무렵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하얀 피부에 우아한 빨간색 벨벳 옷을 입은 소년이 어두운 밤 달빛이 비치는 바닷가 바위 위에 걸터 앉아 자연의 숭고함에 대한 깊은 상념에 잠긴 듯 팔로 머리를 괴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특유의 낭만성이 느껴진다.

클로드 로랭
<성 우르술라의 출항>

1641년

프랑스 출신이지만 대부분의 생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던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는 튜브물감이 없던 시절, 기억에 의존하여 상상하며 그릴 수밖에 없었음에도 아련한 빛의 표현이 탁월하다.

그림 속 주인공 우르술라는 브리튼의 공주로 처녀 11,000명과 함께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가 독일 쾰른에서 이곳을 침략한 훈족에게 목이 잘린다. 우르술라 일행이 들고 있는 활과 화살은 훈족 우두머리의 청혼과 개종을 거부한 우르술라가 어떻게 순교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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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

1837년 이전

영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 터너는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아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을 향한 뜨거운 집념으로 변화무쌍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노력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배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은 채 4시간동안 성난 바다를 관찰하기도 하고, 달리는 증기기관차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비바람과 안개, 구름이 뒤섞인 열차 밖 풍경을 직접 체험한 일화도 전해진다.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빛과 어둠으로 뒤엉킨 밤하늘과 암초에 부딪쳐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파도, 성난 바다를 향해 울부짖는듯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엄청난 비극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늘과 땅을 가르는 경계선이나 사물의 윤곽선이 없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표현법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비난 받았지만 이후 인상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존 컨스터블
<스트랫퍼드의 종이공장>

1820년

같은 낭만주의 화가이지만 존 컨스터블은 터너와 달리 정적이고 평화로운 자연풍광을 성실하게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작품 속 풍경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스트랫퍼드 세인트 메리 마을의 외곽 스쿠어강 섬 위에 지어진 수력을 이용하는 종이공장이다.

왼쪽에 공장의 물레방아가 보이고 구불구불 흐르는 강가에 띄워진 나뭇배와 밝은 햇살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들과 하늘의 구름이 섬세하게 묘사된 데 반해, 인간은 그저 대자연의 일부분인듯 무심히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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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욕하는 사람>
1885–90년경

이탈리아 여행에서 르네상스 회화와 조각에 매료되어 고전적 전통을 따르던 시기에 그려진 누드화로 여인의 포즈와 선을 강조하여 감각적으로 그려낸 화풍이 고전적이다.

인상주의 대표 화가답게 짧은 붓 터치보색으로 대상의 빛과 움직임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르누아르는 말년에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15분마다 잠에서 깰 정도의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작품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이미 발병하였다고 하니 작품의 크기와 무관하게 대작이라 평가될만하다.

에두아르 마네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
1878–80년경

카페 콩세르는 가벼운 노래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특히 인상주의 예술가들과 문필가들이 만나던 세련된 장소였다.

마네는 잔을 여러 개 들고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서빙하는 종업원들의 솜씨에 감탄하여 그중 가장 뛰어난 종업원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파격적인 주제 선정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방식이 자유로워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지만 인상파 전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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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창문 앞 과일 그릇과 맥주잔
>
1890

세잔의 정물화를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최고의 보석'이라고까지 말한 세잔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볼 수 있다.

과일, 도기, 구겨진 테이블보 등 세잔의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소재들과 함께 브르타뉴 지방의 물통을 그린 것으로 보아 세잔의 그림을 가지고 가서 살던 브르타뉴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나 창문 밖 모습은 세잔이 살았던 프로방스의 모습과 더 유사하다. 시점 또한 세잔의 영향으로 자유분방하게 구성되었으나 색감은 이후 타이티 미술에서 보게 될 고갱 특유의 강렬함을 품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1890

반 고흐의 그림은 오늘날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지만, 살아 생전 그는 그림을 거의 팔지못해 빈곤하게 생활하였고 스스로 실패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자기 작업 방식에 대한 확신으로 계속해서 그림 작업에 몰두했다.

이 그림은 프랑스 남부 생 레미의 생폴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예견하고 삶의 마지막을 불꽃처럼 태우던 시절 그렸다.

버려진 정원에 어지러이 자란 풀을 끊임없이 관찰하여 일반인들의 시각에서는 볼 수 없는 색채를 찾아내고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고흐 그림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찬란한 햇살을 담은 밝은 색채와 유화 물감을 겹쳐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이 이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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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 사람을 향하다> (국립중앙박물관 발행)

​이미지 출처: 영국 내셔널갤러리 웹사이트: https://www.nationalgallery.org.uk/paintings/search-the-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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